interlude
2020 三日天下
박호은 : interlude
2020. 5. 29 - 5. 31
공간:일리
박호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세계에 치명상을 입혔고, 사회는 사태 수습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방역을 위해 필요하다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의 돈벌이조차 틀어막는 상황이다 보니, 직접적인 기능이 없는 예술은 거의 추방되는 수준으로 밀려났다. 예술 행사 대부분이 연기되거나 축소되었고, 경우에 따라 아예 취소되기도 했다. 예술계 종사자이지만, 당연한 선택이고, 타당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코로나19가 변수로 지나가는 게 아니라 상수로 자리잡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4월 11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무서운 이야기다. 뒷전 취급에 익숙한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방대본의 발표는 암담하게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예술 자체에는 그렇게 큰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술은 무용성을 통해 역설적으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온 활동이다. 물론 예술이 수단으로 작동하는 순간들도 있다. 그러나 예술의 수단적 가치 또한 예술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특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예술이 다른 활동들과 구분되는 고유한 지위를 갖는 것이다.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의 열위는 적어도 예술에 대한 근원적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바뀐 것은 관객과의 접속에 커다란 장애가 생겼다는 것이고, 해야 할 일은 그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다.
주역에 산천대축(山天大畜)이라는 괘가 있다. 여기서 '축'은 막다, 쌓다, 기르다 등의 의미가 있고, 그 의미들이 얽혀 아름다운 통찰을 구성한다. 요컨대 크게 막힐 때, 크게 분투하게 되고, 그것이 쌓여 크게 자라게 한다는 말이다. 이 전시는 코로나19를 삶의 새로운 조건으로 수용하는 데서 비롯하였다.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을 반영하여 전시장과 작업실의 상태를 겹쳤다. 예술에 대한 나의 시각을 시각화한 몇 개의 구조물이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고, 나는 그 사이사이 비치해 둔 물품들과 더불어 독서와 낙서를 하며 전시 기간을 통과한다. 방문객은 전시 감상자로서 설치 작품들을 관람하는 한편 작업 동료로서 작가와 함께 코로나19 이후의 삶과 예술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될 것이다.